불면증 해소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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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3-03-05 14:42 조회2,821회 댓글0건본문
3. 당신도 불면증이 될 수 있다.
이상한 사람의 마음
[사례 1] 남자 고교생 18세
대학 수험 준비 때문에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있는데, 때로 눈이 맑아지며 잠을 못 자는 날이 있다. 그러면 다음날은 머리가 무거워 공부의 능률이 현저히 나빠지는 것같이 느껴진다. 이것은 필연 잠이 부족한 때문이다. 학습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서도 저녁마다 잘 자야겠다. 이런 생각으로 자리에 누우면 (빨리 자자. 빨리 자야지) 하지만 잠이 통 오지 않는다. 도리어 눈이 초롱초롱해 오며, 그 다음날은 머리가 무겁다.
이렇게 어쨌든 빨리 자려고 애를 쓰면, 도리어 그 의지와는 반대로 잠을 못 자게 되는 것이다.
이 학생은 시험에 패스하기 위해 언제나 머리를 명석한 상태로 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이 오히려 잠을 못 자게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수험 공부가 원인이니, 어려운 시험을 치르는 일을 그만 두라고 할 수도 없다.
[사례 2] 29세 남자
작년, 회사의 정기 검진에서 결핵이라는 선고를 받은 이후 줄곧 요양소에서 치료를 받아 왔다. 낮에는 거의 안정하고 있다. 이따금 날씨가 좋으면 뜰을 산책할 정도며, 그 외에는 할 일없이 지내는데 밤에 좀처럼 잘 수가 없다. 자지 않으면 몸에 해롭다, 투병에도 방해가 된다고 생각되어 자려고 하지만, 아무리 해도 잘 수가 없다. 이제 신경도 피로하고 이러다가는 회복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되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수면제를 먹어 보려도, 이제는 수면제가 몸에 나쁘지나 않을까, 그리고 꼭 수면제를 먹어야 잠이 오게 되면 어떻게 하나- 이런저런 생각에 도시 어찌해야 좋을지를 모른다.
이 두 가지의 임상예(臨床例)를 보아서 알겠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참 미묘해서 자지 못하는 괴로움- 그 원인이 되는 것은 자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마음 자체에 있을 때가 많다. 이것이 소위 불면 공포증이다.
지금까지 말한 바와 같이 여러 가지 원인으로 잠이 오지 않으면 물론 그 자체도 괴롭지만, 그 보다는 그로 말미암아 자기의 마음이나 몸에 해로운 영향이 오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아주 불안해진다. 그래서 이 책을 쓰는 목적의 하나는 이 공연한 근심을 없애는 데 조금의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불면에 대한 가장 현명한 대처는 지나친 근심 걱정을 쓸어버리고 숙면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원인을 제거하는 데 있다. 그렇게 하면 저절로 불면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불면의 원인을 규명하는 일과 제거하는 일은 그렇게 쉽지는 않다. 또 그 원인이 배제되었어도 사람에 따라서 불면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남아서, 잠을 이룰 수 없는 고민이 계속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모든 일에 초조하게 조바심하며 매사에 불안하기 쉬운 사람은 별다른 원인이 없어도 불면 공포증을 갖게 되는 일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불면에의 대책은 곧 불면 공포증에의 대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실 잠을 자지 못한다고 호소해 오는 사람과 상담하는 가운데 살펴보면, 대부분이 불면 공포증이 문제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불면 공포증이 어째서 일어나는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초점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한다는 병법(兵法)에서와 같이 증상의 원인을 알고 나 자신의 상태를 알아야만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불면은 스스로 일으킨다.
수면 술을 알기 전에 여러분을 자지 못하도록 조작해 보자.
자! 자려고 자려고 노력해 보라.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 보라. 잔다는 것은 의식이 없어지는 것이다. (아! 어느새 졸다가는 그 뒤는 아무 것도.......)라는 것이 잔다는 것이다. 그럴 때(자자 잠들자.)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잠이 안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 (자, 자, 잠들자)고 한다면 당신도 불면증이 된다.
보통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났을 때 머리가 몽롱하며 몸의 컨디션도 원래의 컨디션이 아닌 것이 보통이다.
연예인들은 아침 일찍 일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그것은 일면의 진실이며, 금방 일어났을 때는 워밍업의 시간이 짧기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못하다.
자동차도 엔진이 더워질 때까지 아이드링을 하여 엔진의 워밍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샐러리맨들은 세수하고 신문을 읽으면서 식사를 하고 만원 버스에 시달리다 보면 어느새 심신이 활기를 띠며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처럼 몽롱했던 느낌은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자는 데 신경을 쓰는 사람이나, 자기 몸에 대해 세세한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침에 갓 일어났을 때의 몽롱한 기분에 사로잡히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머리가 흐리멍덩한 느낌이라든가 잠이 덜 깬 느낌, 몸이 나른한 것을 보면 틀림없이 어젯밤에 잠을 못 잔 때문이라고 결론짓는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머리의 회전이 둔해지며 몸에도 좋지 않다.
이렇게 불안에 싸이게 된다. 거기서 악순환이 시작된다. 밤에는 아무리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잘 자지 못했으니 컨디션이 나쁠 것이라고 자기 암시를 강하게 한다.
이렇게 불안한 주의를 자기에게 기울이면 느낌은 더 강하게 된다. 좀 어려운 말로 표현하면, 주의와 감각의 정신 교호 작용(精神交互作用)이라 하겠다.
요컨대, 일은 손에 안 잡히고 언제나 자기가 자지 못한다는데 마음이 쏠려, 그 불안이 차츰 더해 가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불면 공포라는 악마는 그 모습을 뚜렷이 드러낸다. 이렇게 되면 잠을 못잘뿐 아니라 머리가 무거운 느낌, 몽롱감, 기억력 감퇴, 몸이 나른하다, 피로하기 쉽다 등등의 증상을 수반하게 된다.
수학에서는 [역(逆)은 반드시 참이랄 수 없다]고 하지만, 이런 경우 도리어 머리가 무거운 느낌, 몽롱감, 기억력 감퇴, 몸이 나른하다, 피로하기 쉽다 등의 심신의 부조를 걱정만 하는 노이로제 증상인 사람은 그 때문에 잠을 못 잘 때가 있다.
당신이 잠자고 싶지 않다면 열심히 잠들려고 노력하고, 그로 말미암아 만약 못 잤다면 심신에 어떤 악영향이 미칠까 심각하게 그 놀라운 결과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아이러니가 당신의 불면증을 고치는 근본 원칙에 관계된다는 먼저 염두에 두면서 처음에 쓴 것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불면 공포를 만드는 의사
의사들 가운데는 간혹 무신경한 사람이 있어,
[무엇보다 이런 병에는 푹 자는 것이 중요해요. 뭐라고요, 4시간밖에 못 잔다? 그거 큰일인데, 집에 가서 빨리 자야겠군. 아무리 약을 먹어도 잘 자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환자 중에는 이런 말만 듣고도 잠이 오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흔히 소풍 가는 전날 밤이라던가 시험이 있는 전날 밤,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것은 소풍 가는 것이 즐거워서, 시험이 걱정이 되어 잠이 오지 않는 점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풍을 가니 빨리 자야지)하는 마음이나 (시험이니까 충분히 자자. 못 자면 큰일이다)라는 마음이 잠을 설치게 하는 것이다.
불면 공포증이 되면 그 외 여러 가지를 자기 스스로 연구하여 취면의식(就眠 儀式) 을 한다던 가 지나친 노파심을 가져 오히려 거의 병자 같이 보일 때가 있다.
불면 공포증이 되면 대체 어떤 궁리를 해서 자려고 하는가, 또 어떻게 되는가를 알아두는 것은 수면 술에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신도 아마 이렇게 극단 적은 아닐지라도 불면 공포증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생각,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불면 공포증의 여러 양상(楊相)을 안다는 것은, 당신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그릇된 지시)를 주는 의사를 추방하는 것이 된다.
나는 밤을 미워한다
(나는 밤을 미워한다)이런 제목의 영화가 있었다. 이것은 성(性)을 주제로 한한 영화였지만, 잠을 못 자는 사람들은 낮일이 끝나고 차차 저녁이 다가오면 머리 속을 차지하는 것은 오늘밤은 잘 수 있을까, 못 자면 어떻게 하나 하는 잠에 대한 걱정이다.
다른 사람은 일에서 해방되어 휴식을 취하며 하루의 피로를 풀 때, 잠 못 자는 사람은 밤을 미워하며 밤이 없었으면 하고 고민한다. 심지어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벌써 오늘밤의 잠을 생각하고 우울해지며, (나는 밤을 미워한다)로 끝나지 않고 잠마저 미워하게 될지 모른다.
이는 마치 연인이 자기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해서 그 연인을 미워하다 지쳐서 인생 그 자체조차 싫어지고 저주스러워지는 것과 같다.
차라리 이 세상에 여자(남자)란 건 아예 없는 것이 좋아. 그러면 사랑에 애태우지도 않을 터인데 하는 식으로, 차라리 이 세상에 밤이 없다면 잠으로 고민하지 않아도 될텐데 하고 불면의 포로는 밤을 원망하는 것이다.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기
옛날 사람들은 흔히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자고 했다. 그러나 세상이 바빠지고 보니 그렇게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 거기다 퇴근 시간부터 취침 시간까지의 사이를 즐거움과 쾌락으로 가득 채우려는 사람이나, 밤늦게까지 일에 매달리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어 조기 조침은 무리한 주문이 되었다.
그런데 심야의 TV 영화 프로도, 집안의 단란도, 감연히 무시하고 자리에 드는 사람이 있다. 나는 언제나 잠들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자리에 들어가서 잠이 들 때까지 몇 시간, 심할 때는 3시간이나 걸린다. 이러다가는 아무래도 수면 부족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 일찍부터 자리에 들면 그만큼 빨리 잠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서 저녁 식사가 끝나자마자 벌써 자리에 들어서 근엄한 철학자나 된 것 같은 얼굴로 누워 있다.
그러나 역시 늦게까지 잠들 수 없다. 악전고투 끝에 간신히 자기는 잤는데, 다음날 아침 눈을 떠 자리 속에서 생각하기를 (어제 저녁은 잠을 설쳐 수면 시간이 부족했다. 좀더 자야겠다. 조금이라도 더 자리에 들어서 몸을 쉬도록 해야지)이렇게 자리에만 미련을 가지고 늘어 붙어 어떻게 하던 수면 시간의 부족을 보충하려고 한다. 그 결과, 학교나 직장을 지각하기가 일쑤이다.
필자에게서 불면 교정을 받던 사람도 조사해 보니 낮의 노동 시간은 약 8시간, 나머지 시간을 자리에 늘어 붙어있는 사람이 있어 실소(失笑)했던 일이 있다.
(잠깐 실례)도 할 수 없다
다망한 예능인은 흔히 차 안에서 잔다던가 스튜디오에서 잠깐 가면(假眠)을 한다. 4~5시간 밖에 자지 못하는 사람, 4~5 시간 정도밖에 자지 않고서도 원기 왕성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은 일부 잠깐의 틈을 봐서 수면을 취하는 것이다.
좋은 기록을 내는 스포츠 선수도 틈만 생기면 잠깐이라도 눈을 붙인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에게는 이 (잠깐 실례)가 비교적 쉽고 그 효과도 크다. 그러나 항상 게으름을 피우고 빈둥대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잘 되지 않는다. 잠이 부족하다고 투덜대는 사람 가운데는 에너지를 최대한 쓰지 않아서 그 찌꺼기가 말썽을 내는 사람이 많다. 적극적 정력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길게 자지 않고서도 잘 견디며, 부족한 잠은 (잠깐 실례)로서 충분히 보충하고 있는 것이다.
자리에 들면 못 자게 된다
여러 가지로 애써 보지만, 일찍 자는 것도 안 돼, 낮잠도 못 자 -이렇게 되면 최후의 수단으로 잠이 올 때까지 일어나 있어보자. 추리 소설을 읽고 텔레비전을 보고 군것질도 하면서 (마누라가 얼마나 몰래 돈을 모았을까)하고 생각도 하며 잠들지 못하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내버려두면 슬며시 졸음이 오기 시작한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돼, 빨리 자리에.....)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이 순간에 눈이 번쩍, 잠은 어디론가 도망가 버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잠은 마치 작은 새와 같다. 손에 앉히려고 애써 부를 때는 오지 않는데, 그대로 가만히 놔두니 어느 새 손에 와 앉았더라.]고 한 사람이 있다.
처음 잠이 올 때까지는 일어나 있자고 작정하고, 잠 이외의 독서나 텔레비전을 잡념없이 집중해서 본다.
이 무엇인가에 집중했던 것이 잠을 청하는데 막상 자리에 들면, 이번에는 잠 그 자체를 의식하기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한다.
4. 소리와 잠과의 관계
소리가 있는 세계
소음이 잠을 방해한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다. 물론 시끄러운 곳보다는 조용한 곳이 잠들기 쉬운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이 소리에 구애받아 잠을 못 잔다고 투덜대는 사람은 조용한 곳이라도 구애를 받는다.
다시 말해서 잠은 조용한 곳이 아니면 취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소리가 나는 모든 사물을 자기 주위로부터 제거하지 않고는 안정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시비 끝에 이웃집 라디오를 끄게 하고, 자기 집 시계도 못 가도록 하고, 개가 짖으면 입을 틀어막고, 소음 천지인 도심지를 떠나 통근하는 데 1시간 이상이나 걸리는 교외로 이사해서 조금이라도 소리의 폭력으로부터 도피해 보려고 해 보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소리가 없는 곳과 그런 상태는 있을 수 없다.
전시 중 공습을 만난 사람이 불을 끄려고 필사적이 되어 있었을 때는 불이 조금도 무섭지 않았는데, 소방 단원에게 재촉을 받아 피난을 하게 되니 갑자기 무서워졌다는 것이 흘려버릴 작은 소리도 과민하게 귀에 거슬리고 어디가나 해방되지 못한다. 소리에 신경을 쓰게 되면 의식은 소리에 집중되고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결과가 되어 버린다.
잠깐 책을 덮어두고 주위의 소리에 귀를 기울어 보라. 지금까지 들리지 않았던 여러 가지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멀리서 들리는 기적소리, 바람소리, 멀리서 개 짖는 소리, 동차 소리, 유리문의 달그닥거리는 소리, 그리고 시계의 초침 소리까지-.
이렇게 정신을 기울이느냐 않느냐에 따라 소음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기분과 의식의 방향에 따라 조용하다고 생각한 곳도 얼마든지 여러 가지 소리는 나고 있는 것이다.
소리 없는 세계
소리 없는 세계라고 해도 좋을 장소라면 방송국의 스튜디오, 레코드 회사의 녹음실이 있다.
여기서는 밖에서의 잡음이 완전히 차단된다. 또 안에서 소리를 내더라도 불필요한 반향(反響) 이 없도록 설계되어 있어 처음인 사람은 소리가 빨려 들어가는 이상한 기분이 된다. 그런데 소리 없는 세계를 동경하는 불면 공포증의 사람을 이곳에 데려오면 안심하고 잘 수 있을까.
소리라는 것은 하나의 자극이다. 그러므로 조용한 스튜디오에 들어가면 과연 아무것도 귀를 자극하는 것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소리하나 없다는 것, 귀에 아무런 자극이 없다는 것이 역시 하나의 자극이 되는 것이다. 밖에서의 소리가 없는 대신, 이제는 평소 느끼지 못했던 귀울림 이나 머리가 윙하는 것 같은 머리 속의 여러 가지 맹념(盲念)이 엄습해 와서 괴롭혀 주는 것 같아 역시 잠을 못 잘 것이다. 소리에서는 도피해도 자기 마음에서 도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소음을 피해 달아나는 사람이 설 땅은 없는 것이다. 도망 다니고 있어서는 문제는 끝내 미해결인 채로 남아 있게 된다. 달아나야 소용이 없다면, 지금 여기 버티고 서서 어떤 결말을 볼 수밖에 없다.
5. 무서운 약
텔레비전·라디오·신문·잡지에는 약 광고가 판을 치고 있다.
어떤 광고 대행사 간부의 말을 들으면, 시청자나 독자의 심리는 광고가 없으면 도리어 쓸쓸해 하는 것 같다면서, 특히 약 광고의 비중은 큰 몫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불면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은 ‘△△제약의 ○○○은 기분 좋은 잠을 약속합니다.’와 같은 캐치프레이즈의 수면제 광고에 솔깃해서 수면제를 한번 먹어볼까 생각하게 되는 것인데, 이것이 꽤 성가신 문제를 초래한다.
불면증에서 불면 공포증에 이르도록 증상을 가진 사람이라면, 몸의 병이라던 가 걱정거리가 있어 자기 몸에 특히 신경질이 되어 있다. 또는 원래가 신경이 세약하여 잔일에까지 신경을 쓰고, 자기 몸을 지나치게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수면제를 먹고 잠을 청하고 싶어 하면서도 몸에 해롭지는 않을까, 중독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망설이게 된다. 따라서 약을 먹으면 약은 해롭다는 갈등때문에 먹어도 효과가 적고, 수면시간을 과소평가하므로 만족하지 못하다. 만약 불면공포증인 사람이 만족할 만큼 푹 잘 정도가 되려면 위험할 정도까지 다량을 먹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다음날은 약의 부작용때문에 몸이 개운치 않다. 그러니 역시 약은 몸에 해로운 것이다 하고 은근히 걱정이 된다.
이렇게 되면 잠들고 싶은 욕망 → 약의 유혹 → 망설임 → 복용 → 후회 → 불안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끝이 나지 않고 악순환을 하게 된다.
이런 뜻에서 불면 공포증 적인 사람이 수면제를 먹는 것은 퍽 사태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원칙적으로 약은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 하면 누구나 부지불식간에 잠의 필요량은 취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잠 쪽에서 그 사람의 필요량만큼 취하게 해 주고 있는 것이다. 약으로써 잘 수 있다 하더라도 불면 공포증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며, 불면의 근본 원인 중 하나는 잠 못 자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의 움직임에 있으므로 약에만 의존한다는 것은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수면제를 함부로 먹으면 불면공포 외에, 수면제 공포증까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이상한 사람의 마음
[사례 1] 남자 고교생 18세
대학 수험 준비 때문에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있는데, 때로 눈이 맑아지며 잠을 못 자는 날이 있다. 그러면 다음날은 머리가 무거워 공부의 능률이 현저히 나빠지는 것같이 느껴진다. 이것은 필연 잠이 부족한 때문이다. 학습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서도 저녁마다 잘 자야겠다. 이런 생각으로 자리에 누우면 (빨리 자자. 빨리 자야지) 하지만 잠이 통 오지 않는다. 도리어 눈이 초롱초롱해 오며, 그 다음날은 머리가 무겁다.
이렇게 어쨌든 빨리 자려고 애를 쓰면, 도리어 그 의지와는 반대로 잠을 못 자게 되는 것이다.
이 학생은 시험에 패스하기 위해 언제나 머리를 명석한 상태로 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이 오히려 잠을 못 자게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수험 공부가 원인이니, 어려운 시험을 치르는 일을 그만 두라고 할 수도 없다.
[사례 2] 29세 남자
작년, 회사의 정기 검진에서 결핵이라는 선고를 받은 이후 줄곧 요양소에서 치료를 받아 왔다. 낮에는 거의 안정하고 있다. 이따금 날씨가 좋으면 뜰을 산책할 정도며, 그 외에는 할 일없이 지내는데 밤에 좀처럼 잘 수가 없다. 자지 않으면 몸에 해롭다, 투병에도 방해가 된다고 생각되어 자려고 하지만, 아무리 해도 잘 수가 없다. 이제 신경도 피로하고 이러다가는 회복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되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수면제를 먹어 보려도, 이제는 수면제가 몸에 나쁘지나 않을까, 그리고 꼭 수면제를 먹어야 잠이 오게 되면 어떻게 하나- 이런저런 생각에 도시 어찌해야 좋을지를 모른다.
이 두 가지의 임상예(臨床例)를 보아서 알겠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참 미묘해서 자지 못하는 괴로움- 그 원인이 되는 것은 자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마음 자체에 있을 때가 많다. 이것이 소위 불면 공포증이다.
지금까지 말한 바와 같이 여러 가지 원인으로 잠이 오지 않으면 물론 그 자체도 괴롭지만, 그 보다는 그로 말미암아 자기의 마음이나 몸에 해로운 영향이 오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아주 불안해진다. 그래서 이 책을 쓰는 목적의 하나는 이 공연한 근심을 없애는 데 조금의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불면에 대한 가장 현명한 대처는 지나친 근심 걱정을 쓸어버리고 숙면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원인을 제거하는 데 있다. 그렇게 하면 저절로 불면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불면의 원인을 규명하는 일과 제거하는 일은 그렇게 쉽지는 않다. 또 그 원인이 배제되었어도 사람에 따라서 불면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남아서, 잠을 이룰 수 없는 고민이 계속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모든 일에 초조하게 조바심하며 매사에 불안하기 쉬운 사람은 별다른 원인이 없어도 불면 공포증을 갖게 되는 일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불면에의 대책은 곧 불면 공포증에의 대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실 잠을 자지 못한다고 호소해 오는 사람과 상담하는 가운데 살펴보면, 대부분이 불면 공포증이 문제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불면 공포증이 어째서 일어나는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초점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한다는 병법(兵法)에서와 같이 증상의 원인을 알고 나 자신의 상태를 알아야만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불면은 스스로 일으킨다.
수면 술을 알기 전에 여러분을 자지 못하도록 조작해 보자.
자! 자려고 자려고 노력해 보라.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 보라. 잔다는 것은 의식이 없어지는 것이다. (아! 어느새 졸다가는 그 뒤는 아무 것도.......)라는 것이 잔다는 것이다. 그럴 때(자자 잠들자.)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잠이 안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 (자, 자, 잠들자)고 한다면 당신도 불면증이 된다.
보통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났을 때 머리가 몽롱하며 몸의 컨디션도 원래의 컨디션이 아닌 것이 보통이다.
연예인들은 아침 일찍 일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그것은 일면의 진실이며, 금방 일어났을 때는 워밍업의 시간이 짧기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못하다.
자동차도 엔진이 더워질 때까지 아이드링을 하여 엔진의 워밍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샐러리맨들은 세수하고 신문을 읽으면서 식사를 하고 만원 버스에 시달리다 보면 어느새 심신이 활기를 띠며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처럼 몽롱했던 느낌은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자는 데 신경을 쓰는 사람이나, 자기 몸에 대해 세세한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침에 갓 일어났을 때의 몽롱한 기분에 사로잡히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머리가 흐리멍덩한 느낌이라든가 잠이 덜 깬 느낌, 몸이 나른한 것을 보면 틀림없이 어젯밤에 잠을 못 잔 때문이라고 결론짓는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머리의 회전이 둔해지며 몸에도 좋지 않다.
이렇게 불안에 싸이게 된다. 거기서 악순환이 시작된다. 밤에는 아무리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잘 자지 못했으니 컨디션이 나쁠 것이라고 자기 암시를 강하게 한다.
이렇게 불안한 주의를 자기에게 기울이면 느낌은 더 강하게 된다. 좀 어려운 말로 표현하면, 주의와 감각의 정신 교호 작용(精神交互作用)이라 하겠다.
요컨대, 일은 손에 안 잡히고 언제나 자기가 자지 못한다는데 마음이 쏠려, 그 불안이 차츰 더해 가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불면 공포라는 악마는 그 모습을 뚜렷이 드러낸다. 이렇게 되면 잠을 못잘뿐 아니라 머리가 무거운 느낌, 몽롱감, 기억력 감퇴, 몸이 나른하다, 피로하기 쉽다 등등의 증상을 수반하게 된다.
수학에서는 [역(逆)은 반드시 참이랄 수 없다]고 하지만, 이런 경우 도리어 머리가 무거운 느낌, 몽롱감, 기억력 감퇴, 몸이 나른하다, 피로하기 쉽다 등의 심신의 부조를 걱정만 하는 노이로제 증상인 사람은 그 때문에 잠을 못 잘 때가 있다.
당신이 잠자고 싶지 않다면 열심히 잠들려고 노력하고, 그로 말미암아 만약 못 잤다면 심신에 어떤 악영향이 미칠까 심각하게 그 놀라운 결과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아이러니가 당신의 불면증을 고치는 근본 원칙에 관계된다는 먼저 염두에 두면서 처음에 쓴 것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불면 공포를 만드는 의사
의사들 가운데는 간혹 무신경한 사람이 있어,
[무엇보다 이런 병에는 푹 자는 것이 중요해요. 뭐라고요, 4시간밖에 못 잔다? 그거 큰일인데, 집에 가서 빨리 자야겠군. 아무리 약을 먹어도 잘 자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환자 중에는 이런 말만 듣고도 잠이 오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흔히 소풍 가는 전날 밤이라던가 시험이 있는 전날 밤,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것은 소풍 가는 것이 즐거워서, 시험이 걱정이 되어 잠이 오지 않는 점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풍을 가니 빨리 자야지)하는 마음이나 (시험이니까 충분히 자자. 못 자면 큰일이다)라는 마음이 잠을 설치게 하는 것이다.
불면 공포증이 되면 그 외 여러 가지를 자기 스스로 연구하여 취면의식(就眠 儀式) 을 한다던 가 지나친 노파심을 가져 오히려 거의 병자 같이 보일 때가 있다.
불면 공포증이 되면 대체 어떤 궁리를 해서 자려고 하는가, 또 어떻게 되는가를 알아두는 것은 수면 술에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신도 아마 이렇게 극단 적은 아닐지라도 불면 공포증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생각,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불면 공포증의 여러 양상(楊相)을 안다는 것은, 당신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그릇된 지시)를 주는 의사를 추방하는 것이 된다.
나는 밤을 미워한다
(나는 밤을 미워한다)이런 제목의 영화가 있었다. 이것은 성(性)을 주제로 한한 영화였지만, 잠을 못 자는 사람들은 낮일이 끝나고 차차 저녁이 다가오면 머리 속을 차지하는 것은 오늘밤은 잘 수 있을까, 못 자면 어떻게 하나 하는 잠에 대한 걱정이다.
다른 사람은 일에서 해방되어 휴식을 취하며 하루의 피로를 풀 때, 잠 못 자는 사람은 밤을 미워하며 밤이 없었으면 하고 고민한다. 심지어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벌써 오늘밤의 잠을 생각하고 우울해지며, (나는 밤을 미워한다)로 끝나지 않고 잠마저 미워하게 될지 모른다.
이는 마치 연인이 자기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해서 그 연인을 미워하다 지쳐서 인생 그 자체조차 싫어지고 저주스러워지는 것과 같다.
차라리 이 세상에 여자(남자)란 건 아예 없는 것이 좋아. 그러면 사랑에 애태우지도 않을 터인데 하는 식으로, 차라리 이 세상에 밤이 없다면 잠으로 고민하지 않아도 될텐데 하고 불면의 포로는 밤을 원망하는 것이다.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기
옛날 사람들은 흔히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자고 했다. 그러나 세상이 바빠지고 보니 그렇게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 거기다 퇴근 시간부터 취침 시간까지의 사이를 즐거움과 쾌락으로 가득 채우려는 사람이나, 밤늦게까지 일에 매달리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어 조기 조침은 무리한 주문이 되었다.
그런데 심야의 TV 영화 프로도, 집안의 단란도, 감연히 무시하고 자리에 드는 사람이 있다. 나는 언제나 잠들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자리에 들어가서 잠이 들 때까지 몇 시간, 심할 때는 3시간이나 걸린다. 이러다가는 아무래도 수면 부족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 일찍부터 자리에 들면 그만큼 빨리 잠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서 저녁 식사가 끝나자마자 벌써 자리에 들어서 근엄한 철학자나 된 것 같은 얼굴로 누워 있다.
그러나 역시 늦게까지 잠들 수 없다. 악전고투 끝에 간신히 자기는 잤는데, 다음날 아침 눈을 떠 자리 속에서 생각하기를 (어제 저녁은 잠을 설쳐 수면 시간이 부족했다. 좀더 자야겠다. 조금이라도 더 자리에 들어서 몸을 쉬도록 해야지)이렇게 자리에만 미련을 가지고 늘어 붙어 어떻게 하던 수면 시간의 부족을 보충하려고 한다. 그 결과, 학교나 직장을 지각하기가 일쑤이다.
필자에게서 불면 교정을 받던 사람도 조사해 보니 낮의 노동 시간은 약 8시간, 나머지 시간을 자리에 늘어 붙어있는 사람이 있어 실소(失笑)했던 일이 있다.
(잠깐 실례)도 할 수 없다
다망한 예능인은 흔히 차 안에서 잔다던가 스튜디오에서 잠깐 가면(假眠)을 한다. 4~5시간 밖에 자지 못하는 사람, 4~5 시간 정도밖에 자지 않고서도 원기 왕성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은 일부 잠깐의 틈을 봐서 수면을 취하는 것이다.
좋은 기록을 내는 스포츠 선수도 틈만 생기면 잠깐이라도 눈을 붙인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에게는 이 (잠깐 실례)가 비교적 쉽고 그 효과도 크다. 그러나 항상 게으름을 피우고 빈둥대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잘 되지 않는다. 잠이 부족하다고 투덜대는 사람 가운데는 에너지를 최대한 쓰지 않아서 그 찌꺼기가 말썽을 내는 사람이 많다. 적극적 정력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길게 자지 않고서도 잘 견디며, 부족한 잠은 (잠깐 실례)로서 충분히 보충하고 있는 것이다.
자리에 들면 못 자게 된다
여러 가지로 애써 보지만, 일찍 자는 것도 안 돼, 낮잠도 못 자 -이렇게 되면 최후의 수단으로 잠이 올 때까지 일어나 있어보자. 추리 소설을 읽고 텔레비전을 보고 군것질도 하면서 (마누라가 얼마나 몰래 돈을 모았을까)하고 생각도 하며 잠들지 못하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내버려두면 슬며시 졸음이 오기 시작한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돼, 빨리 자리에.....)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이 순간에 눈이 번쩍, 잠은 어디론가 도망가 버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잠은 마치 작은 새와 같다. 손에 앉히려고 애써 부를 때는 오지 않는데, 그대로 가만히 놔두니 어느 새 손에 와 앉았더라.]고 한 사람이 있다.
처음 잠이 올 때까지는 일어나 있자고 작정하고, 잠 이외의 독서나 텔레비전을 잡념없이 집중해서 본다.
이 무엇인가에 집중했던 것이 잠을 청하는데 막상 자리에 들면, 이번에는 잠 그 자체를 의식하기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한다.
4. 소리와 잠과의 관계
소리가 있는 세계
소음이 잠을 방해한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다. 물론 시끄러운 곳보다는 조용한 곳이 잠들기 쉬운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이 소리에 구애받아 잠을 못 잔다고 투덜대는 사람은 조용한 곳이라도 구애를 받는다.
다시 말해서 잠은 조용한 곳이 아니면 취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소리가 나는 모든 사물을 자기 주위로부터 제거하지 않고는 안정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시비 끝에 이웃집 라디오를 끄게 하고, 자기 집 시계도 못 가도록 하고, 개가 짖으면 입을 틀어막고, 소음 천지인 도심지를 떠나 통근하는 데 1시간 이상이나 걸리는 교외로 이사해서 조금이라도 소리의 폭력으로부터 도피해 보려고 해 보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소리가 없는 곳과 그런 상태는 있을 수 없다.
전시 중 공습을 만난 사람이 불을 끄려고 필사적이 되어 있었을 때는 불이 조금도 무섭지 않았는데, 소방 단원에게 재촉을 받아 피난을 하게 되니 갑자기 무서워졌다는 것이 흘려버릴 작은 소리도 과민하게 귀에 거슬리고 어디가나 해방되지 못한다. 소리에 신경을 쓰게 되면 의식은 소리에 집중되고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결과가 되어 버린다.
잠깐 책을 덮어두고 주위의 소리에 귀를 기울어 보라. 지금까지 들리지 않았던 여러 가지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멀리서 들리는 기적소리, 바람소리, 멀리서 개 짖는 소리, 동차 소리, 유리문의 달그닥거리는 소리, 그리고 시계의 초침 소리까지-.
이렇게 정신을 기울이느냐 않느냐에 따라 소음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기분과 의식의 방향에 따라 조용하다고 생각한 곳도 얼마든지 여러 가지 소리는 나고 있는 것이다.
소리 없는 세계
소리 없는 세계라고 해도 좋을 장소라면 방송국의 스튜디오, 레코드 회사의 녹음실이 있다.
여기서는 밖에서의 잡음이 완전히 차단된다. 또 안에서 소리를 내더라도 불필요한 반향(反響) 이 없도록 설계되어 있어 처음인 사람은 소리가 빨려 들어가는 이상한 기분이 된다. 그런데 소리 없는 세계를 동경하는 불면 공포증의 사람을 이곳에 데려오면 안심하고 잘 수 있을까.
소리라는 것은 하나의 자극이다. 그러므로 조용한 스튜디오에 들어가면 과연 아무것도 귀를 자극하는 것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소리하나 없다는 것, 귀에 아무런 자극이 없다는 것이 역시 하나의 자극이 되는 것이다. 밖에서의 소리가 없는 대신, 이제는 평소 느끼지 못했던 귀울림 이나 머리가 윙하는 것 같은 머리 속의 여러 가지 맹념(盲念)이 엄습해 와서 괴롭혀 주는 것 같아 역시 잠을 못 잘 것이다. 소리에서는 도피해도 자기 마음에서 도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소음을 피해 달아나는 사람이 설 땅은 없는 것이다. 도망 다니고 있어서는 문제는 끝내 미해결인 채로 남아 있게 된다. 달아나야 소용이 없다면, 지금 여기 버티고 서서 어떤 결말을 볼 수밖에 없다.
5. 무서운 약
텔레비전·라디오·신문·잡지에는 약 광고가 판을 치고 있다.
어떤 광고 대행사 간부의 말을 들으면, 시청자나 독자의 심리는 광고가 없으면 도리어 쓸쓸해 하는 것 같다면서, 특히 약 광고의 비중은 큰 몫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불면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은 ‘△△제약의 ○○○은 기분 좋은 잠을 약속합니다.’와 같은 캐치프레이즈의 수면제 광고에 솔깃해서 수면제를 한번 먹어볼까 생각하게 되는 것인데, 이것이 꽤 성가신 문제를 초래한다.
불면증에서 불면 공포증에 이르도록 증상을 가진 사람이라면, 몸의 병이라던 가 걱정거리가 있어 자기 몸에 특히 신경질이 되어 있다. 또는 원래가 신경이 세약하여 잔일에까지 신경을 쓰고, 자기 몸을 지나치게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수면제를 먹고 잠을 청하고 싶어 하면서도 몸에 해롭지는 않을까, 중독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망설이게 된다. 따라서 약을 먹으면 약은 해롭다는 갈등때문에 먹어도 효과가 적고, 수면시간을 과소평가하므로 만족하지 못하다. 만약 불면공포증인 사람이 만족할 만큼 푹 잘 정도가 되려면 위험할 정도까지 다량을 먹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다음날은 약의 부작용때문에 몸이 개운치 않다. 그러니 역시 약은 몸에 해로운 것이다 하고 은근히 걱정이 된다.
이렇게 되면 잠들고 싶은 욕망 → 약의 유혹 → 망설임 → 복용 → 후회 → 불안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끝이 나지 않고 악순환을 하게 된다.
이런 뜻에서 불면 공포증 적인 사람이 수면제를 먹는 것은 퍽 사태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원칙적으로 약은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 하면 누구나 부지불식간에 잠의 필요량은 취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잠 쪽에서 그 사람의 필요량만큼 취하게 해 주고 있는 것이다. 약으로써 잘 수 있다 하더라도 불면 공포증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며, 불면의 근본 원인 중 하나는 잠 못 자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의 움직임에 있으므로 약에만 의존한다는 것은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수면제를 함부로 먹으면 불면공포 외에, 수면제 공포증까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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