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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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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 이란 과연 무엇일까?

최면의 정의를 내리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많은 학자나 전문가들조차 「최면은 이것이다.」라고 확신하여 하나의 정의를 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변화된 의식 상태」, 「고도의 집중 상태」, 「피 암시성이 높아진 상태」, 「트랜스 상태」 등과 같은 공통된 견해를 갖고 있다.

누구나 여러 번 최면을 경험했었음에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뿐인데 아마 당신은 일상생활 속에서 무언가에 푹 빠져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TV 드라마 나 재미있는 오락 프로그램에 푹 빠진 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은 찌개가 넘쳐흐르는 것을 미처 몰랐다거나, 재미있는 책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일에 열중해 시간가는 줄 몰랐다, 아이가 컴퓨터 게임에 정신이 팔려 엄마가 들어와 있는 것도 몰랐다, 등의 일들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이미 최면 상태로 접어들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어떠한 생각이나 하나의 대상, 감각적인 자극에 몰입되면 지각에 이상이나 변동을 일으키는「변화된 의식 상태」가 된다. 이때에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미처 자각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이런 현상을 「자연 최면」이라고 말하며 의도적으로 유도되는 최면과는 구분되지만 그 본질은 같은 것이다. 다만, 자신도 모르게 들어갔다가 자신도 모르게 깨어나는 자연 최면 상태에서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유도되는 최면에서처럼 최면 상태를 유지해서 잠재의식에 유용한 암시를 주고 마음의 문제를 고치는 등의 일을 할 수 없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렇게 독특한 의식 상태로 이끌기 위해 갖가지 유도 암시를 이용하게 되는데 이것을 「최면」 또는, 「최면 유도법」 이라고 한다.

고도의 집중 상태

최면 상태란 어떤 대상에 주의를 강하게 집중시키면 의식이 협착되고 잠재의식이 드러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고속도로에서 핸들을 잡고 달릴 때, 속도의 개념이 없이 무심한 상태에서 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적이 있을 것이다. 또, 차 안에서 신문, 잡지에 몰두한 채 순식간에 도착지에 온 것 같은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이처럼 모든 정신이 하나의 자극 대상에만 고도로 집중된 상태가 바로 최면 상태이다. 즉 우리의 의식을 10이라고 한다면 9개의 의식은 잠들고 1개의 의식만이 깨어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의식이 깨어 있어 최면자의 음성이 모두 들리고 현실감각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지만 의식 수준이 낮아져서 무비판적 이고 주의가 암시에만 극단적으로 집중되어 있는 상 태이다.

트랜스 상태

최면 상태에서는 긴장이 풀려 마음이 평온해지고, 머릿속이 텅 빈 것 같고, 몽롱 해지며 잠이 들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상태에 이른다. 이 상태에서는 근심. 걱정, 불안이 모두 사라지고 정신도 신체도 무통(無痛) 상태가 되며 굉장히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최면의 심도가 깊어졌을 경우에는 기분이 매우 황홀해지고 몸이 없어진 것 같기도 하고, 또 몸이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부유감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 상태를 최면성 트랜스 (Hypnotic trance) 라고 한다. 피최면자는 이 상태가 너무 좋아서 계속 그대로 머물러 있고 싶어 한다. 그래서 최면에서 깨어난다는 암시를 받으면 깨어나지 않으려고 저항을 보이는 피최면자를 볼 수 있다.

피암시성이 높아진 상태

어떤 하나의 대상에 극단적으로 몰입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의식이 협착되어 합리적 이고 분석적인 좌뇌의 활동은 줄어들고, 직관적이고 감상적인 우뇌의 기능이 활성화 되며 의식과 잠재의식으로의 통로가 열려 잠재의식이 도출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 상태가 되면 피암시성이 대단히 높아져서 오감을 통한 현실의 인식능력이나 초감각적 지각, 운동감각, 기억, 감정 등이 피험자에 따라 각성 시와는 다른 아주 독특한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이와 같은 최면 상태에서 적절한 암시를 줄 때 목표하는 바를 성취하는 데 도움을 받게 된다. 또한, 스스로는 느끼지 못하는 비 활성화된 잠재능력을 일깨워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능력을 최고로 발휘케 하거나 무의식 분석을 통한 심리 진단 및 여러 방면으로의 활용이 가능해진다.

흔히 「최면」하면 사람을 잠들게 해서 의식을 잃게 한 다음 마음대로 조종한다거나 마술魔術이나 마법魔法과도 같은 신비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최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신비스러운 모습만 보아 왔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와 편견임을 밝혀 둔다. 최면이 이렇게 신비한 초능력 같은, 비과학적인 것으로 취급받아 온 데는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약 3000년 전 고대 이집트 시대에 쓰인 「에베르스 파피루스」라는 의학서에는「잠자는 사원」이라는 신성한 장소에서 주술사, 샤먼, 치유사, 신관, 종교 지도자들이 주문을 외면 순식간에 병이 낫게 된다는 초현실적인 설명이 되어 있다. 이 「잠자는 사원」은 현대적으로 볼 때 최면요법의 진료소와 같은 것인데, 최면요법과는 명확하게 다른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시술자인 그들이 최면에 대해서 올바른 설명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최면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신이 환자의 몸으로 들어가 기적을 일으키는 현상」 으로 민중에게 설명했다.

결국 사람들은 최면의 과학성을 알지 못한 채 그것을 신들린 힘으로 납득해 시술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최면을 이렇게 오해하는 데는 「최면술」이라는 용어 탓이기도 한데, 그것은 「Hypnosis;최면」라는 단어를 누군가 「최면술」이라고 번역한 것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본래「술;術」이란 뜻은「꾀 술」로써 마술, 요술과 같이 꾀를 부려 사람의 눈을 속이는 기술로 혼동해서 사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용어 사용에 있어 「최면술」이라는 말은「최면」또는「최면 유도법」으로 바꾸고, 「최면을 건다.」 라는 말은 마치 요술(妖術)에 걸리는 것 같은 관념을 불러일으키기 쉬우므로 「최면으로 유도한다.」 라는 말로, 「최면에 걸린다.」는 「최면(상태)으로 들어간다.」 라는 말로 바꿔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최면은 과학이다

최면(催眠 : hypnosis)에 관심을 두는 자기 자신을 지식인답지 않다고 생각 해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최면이 비과학적인 기괴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면의 과학성을 깨닫고 나면 최면은 신비적, 초능력,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현상의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초능력(extrasensory rception;ESP)은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불가사의한 힘을 나타낸다. 그러나 최면은 그런 특수한 힘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과학의 한 분야인 심리학의 영역에서 연구되어 왔으며 이미 정신의학의 견지(見地)에서 카운슬링의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신경증의 치료에도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또 최면을 영력(靈力)같은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나 그것은 오해이며 누구나 과학적, 체계적 방법만 익히면 자신의 문제 해결은 물론 타인을 도와줄 수 있는 능력도 지니게 된다. 영국(1955)이나 미국(1958)의 의학 협회에서는 노이로제, 심신증(心身症), 심인성 질환, 기타 일반 내과, 외과, 산부인과, 치과 등의 치료에 최면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유효한 수단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승인하고 의학 및 치의학 전공생들이 최면 교육을 받도록 하는 정책을 두기도 하였다.

이렇게 최면은 하버드 대학을 비롯한 세계 유명 대학에서 교과목으로 교수(敎授)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놀랄 만한 가치가 인정되어 세계 보건 기구(WHO)에서는 치료의 유용한 수단으로 공인하고 있다. 또 미국의 하버드 대학 내에는 최면 전문 클리닉 센터가 설립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최면은 교육이나 의료 분야뿐만 아니라 성격 개선은 물론 각종 습벽 교정 등 행동요법으로써도 대단한 효과를 올리고 있다. 그 밖에도 기억력 증진, 창의력 계발, 심신의 건강 증진, 범죄 수사 등 일상생활 속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최면은 마법이나 초능력이 아니라 인간 정신 내부에 작용하여 잠들어 있는 잠재의식을 일깨워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자 과학이다.

잠재의식을 조절하는 테크닉

우리는 종종 무의식중에 콧노래를 부르거나,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다른 사람의 전화번호를 누른다거나 나도 모르는 사이 한쪽 다리를 떠는 행동 등을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행위가 일어났음을 말한다. 또 다리를 떠는 행동은 주변 사람이 지적하면 잠시 멈추었다가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다시 다리를 떠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속에는 또 다른 의식이 존재 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무의식적인 행동은 의식으로 컨트롤(control)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다.」라는 딜레마(dilemma)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최면은 바로 이 무의식(잠재의식)에서 일어나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나 행동 패턴을 교정할 수 있는 도구이자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의 의식인 일반 의식 상태에서는 잠재의식과의 교류가 어려우나 최면의 기법을 통해서 잠재의식을 조절하여 부정적인 성격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습벽이나 공포, 스트레스 등을 해소하여 자신이 원하는 삶의 패턴으로 재편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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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은 어떻게 하나?

최면 상태는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있는 상황과 비슷하다. 영화를 보는 동안 옆자리 커플의 팝콘 먹는 소리도 안 들리고 정신없이 영화 내용에 몰입된다. 마음의 한 부분(무의식)은 영화 속에 들어가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지만 다른 한 부분 표면 의식)은 자신이 지금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잘 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영화가 끝난 후에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고 영화 속에 남는 사람이 없듯 최면 상태도 마찬가지다.

최면 상태에서는 이완과 집중도 상태에 따라 표면 의식 운동이 제한되어 거의 수면 시와 같이 편안한 이완 상태를 경험하는가 하면 오히려 각성 시보다 더욱 고도로 일정 부분의 의식이 활발하게 작용하는 상태, 또는 복합적인 양상을 보이는 경우 등 다양한 의식 상태가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최면 상태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시각이나 청각, 관념 운동법(ideomotor Action) 등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는데 주로 어떤 물체의 심상(心想), 관념(觀念) 혹은 단조 롭게 반복되는 소리에 정신을 집중하는 방법이 이용되고 있다. 최면을 유도하는 수단은 바로 암시 이다. 또, 유도 암시(暗示)는 주로 언어가 사용되며 명상 음악 등이 보조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최면은 안전한가?

최면 중에는 의지력을 잃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결코 그런 일은 없다. 최면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모든 통제력을 잃고 최면자에게 지배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면 중에 일어난 일들을 깨어난 후에는 전혀 기억조차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자신이 숨기고 싶은 사적인 비밀이 드러날 것을 염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면은 피최면자의 협조 없이 유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깊은 최면 상태로 들어간다 해도 일부 의식이 깨어 있어 최면자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으며 깨어난 후에는 최면 중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기억할 수 있다. 또한, 최면자가 피최면자에게 부도덕한 위험한 암시를 주게 되면 암시를 거부하고 깨워 줄 것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의지만 있으면 깨어날 수도 있다.

최면이 안 되는 사람도 있나?

최면 감수성(피암시성)은 개인에 따라 높고 낮은 차이가 있어 최면이 잘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최면 감수성은 민감, 보통, 둔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감수성이 낮은 사람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하면 대부분 최면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우리들의 암시 감수성은 매스컴의 보도를 믿고, 광고를 보고, 상품을 선택하는 등의 일상 행동으로도 잘 표현되고 있듯이 보통 인간이면 다소라도 암시에 걸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일반적으로 최면감수성은 여자가 남자보다 약간 높은 경향이 있고 연소할 수록 연장자보다 높은 것이 보통이며 평균지능까지는 지능이 높을 수록 최면감수성이 높은편이다. 성격으로 볼 때는 감상적 또는 공상적인사람, 상상력이 풍부하고 긍적적인며, 성품이 온순하고 정직한 요건을 갖춘 사람이 높은 반면 고집이 세고 자기 중심적이며 비판적 또는 부정적인 성향이 강한사람, 논리적이며 완벽하고 남의 말을 잘 믿지 않는사람, 강박적인 성격의 소유자는 최면 감수성이 낮은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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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 상태와 그 현상

최면 중에서는 과연 어떤 경험을 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개인 최면 감수성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최면의 심도에 따라서도 다르다. 최면 상태에서의 특이한 변화라면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는 급속 안구 운동, 최면자에게 협력하려는 의존적 신뢰 관계인 라포(rapport)형성, 신체의 극단적 경직이나 깊은 이완(弛緩) 현상인 카타랩시(catalepsy), 감정 표현이 그대로 드러나는 정서적 변화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피최면자는 언제든 말을 한다든지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며 스스로 눈을 뜰 수도 있다. 이 상태에서는 실제로는 최면 상태에 들어가 있는데도 그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최면자가 최면 유도 전에 피최면자에게 「최면에 들어가도 의식을 잃는 일은 없다.」 라고 설명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최면에 들어가면 의식이 사라져 아무것도 모르게 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한 손이 마비된다.」든지 「한쪽 팔이 무거워 들어 올릴 수 없다.」라는 암시를 주어 피최면자가 그것을 느끼게 될 때에야 비로소 믿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 단계에서는 암시에 의해 신체의 반응을 지배할 수 있는데 이를 「운동 지배 단계」라고 한다. 중간 정도의 최면에서는 온몸이 나른하고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몸도 마음도 무통 상태가 된다. 이 단계에서는 양파를 사과라고 암시한 후 먹게 하면 아주 맛있게 먹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미각 뿐 아니라 후각, 청각, 촉각, 시각 등 모든 감각 기관을 변화시킬 수 있는데 이를 「감각 지배 단계」라고 한다. 깊은 최면 상태에서는 기분이 매우 황홀해지고 몸이 공중에 떠 있는 부유감(浮遊感)을 느끼기도 하며 의식 작용은 완전히 둔해져 피최면자는 말문을 열기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상태에서는 「후최면암시」를 주기가 매우 용이한데 「후최면암시」란 어떤 특정한 암시가 최면 후에 실현될 것을 목적으로 최면 중에 주는 암시를 말하는 것으로 예를 들어 애인과 헤어져 슬픔에 잠겨 있다면 「신경 쓰이지 않는다.」 「마음이 평온해진다.」는 등의 암시나 「잊혀진다.」라는 건망 암시를 줌으로써 마음의 평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를 「기억 지배 단계」라고 한다.

종래의 최면 요법은 증상을 직접적인 목표로 잡아왔으나, 에릭슨은 내담자의 심리적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을 주안으로 삼아 간접적으로 증상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는 내담자에게는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최면자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내담자가 자기 치유력을 끌어내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특수한 의식 상태로 유도하기 위한 종래의 최면 방식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라, 내담자의 자기 치유력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각각의 내담자의 특수성을 고려할 필요가 생긴다.에릭슨은 환자의 능력, 성격, 직업, 가족, 말투, 생활사, 때로는 환자의 결점이나, 교정에 대한 저항마저도 교정에 이용했다. (자질의 이용). 에릭슨의 방법의 최대의 특징은, 삽화나 비유, 혼란이나 불합리 등의 간접 암시 사용이다. 삽화나 비유를 사용하면 환자의 흥미를 유발하기가 용이하고, 직접 암시와 같이 강요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또한 기억하기 쉽기 때문에 환자는 필요한 때에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이든) 이용할 수가 있다.

밀턴·에릭슨의 방법은,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에 관하여 새로운 견해를 가져왔다. 의식과 무의식중에 관한 견해는, 지금까지 정신 분석의 영향을 많이 받아 왔다. 프로이드적 견해에 의하면 의식은 논리적·도덕적이고 높은 가치를 갖지만, 무의식은 비논리적·비도덕적이라고 되어 있다. 양자간에는 상하 관계가 설정되어 있어 의식이 무의식을 검열에 의해서 지배한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정신 분석의 치료는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에릭슨은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화하는 것이 교정의 필요조건은 아니다.

간접 암시 등의 기법에 의해 환자가 무의식인 채 치료하는 것이 가능하다」라고 한다. 어느 경우는, 의식적인 커뮤니케이션보다 무의식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효과가 있어서 에릭슨은 이야기한 내용을 일부러 망각시키는 수법을 이용하기도 했다.헤이 리, 밴들러, 세이저, 베잇슨 등 이름 있는 요법가들이 큰 영향을 받은 밀턴·에릭슨의 요법은 후대의 사람들로부터 「기법의 보고이다」라고 불릴 만큼 다양함을 선보였다. 그러나 오늘날 요법가들은 에릭슨의 화려하고 다양한 기법에 매료되어 기법에 비중을 두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겠다. 에릭슨 최면은 언제나 재치 있는 언변과 유머러스함으로 환자의 모든 측면을 적극적으로 파악하여 따뜻하게 격려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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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P

NLP(Neuro Linguistic Programming)는 의식보다는 잠재의식에 큰 비중을 두어 새롭게 개량된 방법으로 심층의 마음을 다스리는 심리교정 기법이다. 사람은 각자가 자기 특유의 성품(마음)과 스타일을 가지고 행동하게 되는데 그것은 정신 건강에 영향을 끼치게 될 뿐만 아니라, 인생의 성공, 실패에도 관여하게 된다. NLP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행동 패턴을 창출하기 위해 언어나 신체적인 모션 등의 다양한 기법이 연출되기 때문에 하나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어떤 분야에서 던 뛰어난 업적을 이루어 낸 사람들을 보면 그들을 성공하게 한 법칙(패턴)이 있는 데 NLP는 출중한 그들이 사용한 행동 패턴을 찾아내서 그 과정을 프로그래밍한 방법이므로 과학인 것이다. 이 과정을 모델링(modeling)이라고 말하는데 그렇게 해서 발견된 패턴, 기법이나 기술은 심리요법뿐만 아니라, 카운슬링, 교육, 스포츠, 비즈니스 등의 분야에서 이용하면 신속하고 놀라운 효과를 확실히 올릴 수 있는 것이다.

Neuro Linguistic Programming의 약어인 NLP의 N은 Neuro(신경)의 약어로서 인간 행동은 기본적으로 오감 즉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이라고 하는 신경적 과정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들은 오감을 통하여 현상의 세계를 경험하며, 정보를 얻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 그 바탕 위에 행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마음을 이해하고, 조정하고, 재구성하는데 N의 의미는 큰 것이다. NLP의 L, 즉 Linguistic(언어)의 부분은 우리는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Communication)하기 위해 사고나 행동의 순서를 정해서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P, 즉 Programming은 내가 소망하는 바람직한 결과를 얻기 위해 사고나 행동의 틀을 새롭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NLP는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주관적 체험의 구조를 어떻게 조직하고, 감각 기관을 통해서 인지한 외부 세계를 어떻게 여과하여 정리하는가를 다룬다. 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말로 묘사하고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대해서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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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 훈련

AT(Autogenes Training)로 약칭되기도 하는 이 새로운 자기최면법은 독일이 낳은 위대한 석학 J. H. 슐츠 박사가 연구 개발했으며, 초창기 (1930년대)에는 주로 유럽 대륙에서 연구가 계속되고 이용되어 왔지만 그 후 AT의 진가가 수없이 확인되고 알려지자 근래에 와서는 미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 각처에 보급되어 바야흐로 AT 붐이 일고 있다. 독일에서는 교육과정과 임상 치료를 모두 건강 보험이 지불할 정도로 그 효과가 검증되어 있다. 이로써 그는 인류에게 이바지한 공로가 크게 인정되어 노벨상 후보로 추대되기도 했다. AT의 목표는 이완(Relaxation)을 잘 시킬 수 있는 데 있다. 그렇다고 단지 근육의 긴장을 푸는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각 단계의 연습을 통해 점진적으로 심리적 내지 생리적 긴장을 완화시키는 한편 내적 이완을 토대로 하여 연습자(이상자든 정상자든)가 전반적으로 정신이나, 신체적으로 균형 잡힌 상태가 된다. AT는 일상생활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벼운 문제를 취급함에 있어서 아주 긴요하게 이용될 수 있다. 즉 생활상의 적응을 돕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적극적으로 상쾌한 생활을 하기 위해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마이너스 조건에 있는 것이 임상 상의 환자이고 제로의 조건에 있는 것이 정상자라고 생각한다면, 환자와 같이 마이너스 조건에 있는 사람을 제로의 조건까지 끌어올리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제로의 조건에 있는 사람을 플러스 조건에까지 끌어올리게 할 수 있다.